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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자 충현원 등 록 일 2019년 10월 23일 14:02
제     목 “뿌리 찾아온 충현원생들 눈망울 못잊어”
드림이만난사람] 31.전쟁고아 뿌리 찾은 유혜량 목사
“뿌리 찾아온 충현원생들 눈망울 못잊어”
강련경 vovo@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08-05-06

얼마 전 한국전쟁 고아들에 관한 책이 출간됐다. ‘6·25판 쉰들러’의 고아사랑 기록을 담은 ‘전란과 아이들’. 300페이지 분량의 책이 출간되면서 미 언론과 미 공군, 중앙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잘못 알려진 역사의 진실을 바로 잡고, 외국에 남아있는 한국전쟁 고아들의 기록을 한데 모은 대목에 사람들의 관심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것이다. 이 책은 사장될 뻔 하다 한 목사의 노력으로 한국에서 먼저 출간됐다. 그 결과 미국과 한국어판 판권 모두를 한국이 소유하게 됐다.

그 중심에는 ‘전란과 아이들-그 일천명의 아버지’ 를 발행한 유혜량 목사(58)가 있다. 듬성듬성 하얗게 샌 머리는 반듯하게 올려 쪽 찌어져 있다. 하얀 저고리에 아래는 항상 작업복 치마차림이다. 국내 현존하는 보육시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충현원’의 원장으로서 해외입양아들의 뿌리 찾기에 나서고 있는 이다. 그의 마스코트가 돼버린 하얗게 쪽 진 머리와 작업복 치마에는 전쟁고아, 해외입양아, 소년소녀가장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그의 삶의 흔적이 묻어 있다.



‘전란과 아이들…’이 나오기까지

“처음에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충현원을 방문하는 원생(입양아)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해외입양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이는 자료들과 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입양아들을 보며 잊혀져가는 사실들을 찾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됐죠.”

유 목사는 몇해 전부터 미국 남장로 선교부와 시에틀, 라스베이거스 이곳 저곳을 다니며 한국전쟁 당시의 흔적을 찾아 나서고 있다. 충현원 입양아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다 지난 200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사진 전시회 ‘미군 병사들과 한국아이들-그들의 사랑 이야기: 1950~1954년의 미군 병사와 한국 어린이들’에 참석해 우연히 브레이즈델 목사의 아들을 만났다. 한국전쟁 고아들을 돌본 이들이 서로 맞은편 방에 투숙하게 된 것. 이것을 인연으로 유 목사는 브레이즈델 목사의 회고록 ‘전란과 아이들’ 책의 판권을 받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96세였던 브레이즈델 군목을 작고하기 바로 직전 만난 것과 미군장병들이 가진 사진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던 것. 그때에는 막연히 원생들을 위해 자료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했던 일인데 이렇게 책으로까지 출판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라고 유 목사는 출판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브레이즈델 목사의 아들인 카터 목사는 아버지의 유언이라며 회고록 판권을 충현원에 넘겼다. 한국전쟁 고아를 돌본 브레이즈델 목사의 삶과 충현원이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점에서 책 출판 수익금으로 고아들을 위한 건물을 복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출판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출판일을 20여 일 남겨놓고 출판사와의 약속이 취소됐다. 출판사와의 일정이 틀어지며 번역과 책판형, 지질, 인쇄 등 모든 것을 유 목사 혼자 도맡아 해결해야만 했다.

“출판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20여 일을 남겨두고 저 혼자 책을 출판 한다는 것은 불가능 했지요. 모두들 안 될 것 같다며 출판을 말렸습니다. 하지만 적재적소에서 도움을 주는 지인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전문 군사용어를 번역할 수 있는 이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가 하면 책 출판을 위한 ISBN 번호도 인쇄를 3일 앞두고 구할 수 있게 된 것 등이지요.” 유 목사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책을 출판 하게 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고아들 보금자리 되살리기

지난 2005년, 30년 전 미국으로 입양됐던 한 30대 남자로부터 광주시장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 들었다. 자신의 존재의 유일한 진실이 되어주는 충현원을 보존해 달라는 것.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려 고국에 돌아왔을 때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 자신의 기억의 시작인 충현원이었단다.

많은 고아들에게 충현원은 고향이자 탯줄과도 같은 존재다. 유 목사에게도 충현원은 미국에 살고 있던 그를 한치의 고민도 없이 불러들인 고향과 같은 곳이다.

국내 현존하는 보육시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양림동의 충현원은 6·25 당시 부모도 잃고 집도 없이 헤매던 전쟁고아들의 작은 안식처였다. 1952년 고(故) 박순이 여사가 40여 명의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서 돌보던 것이 계기가 돼 설립됐다. 하루만 먹지 못해도 죽을 수밖에 없던 영아들에게 일일이 죽을 쑤어 먹이던 박순이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 지난 10여 년 넘게 충현원은 방치되었다. 하지만 고 박순이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미국에서 생활중인 그의 며느리 유혜량 목사가 한국으로 건너와 이곳을 맡게 되면서 충현원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전쟁의 고통 속에서 수많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보금자리를 되살리고자 쓰러져 가던 충현원을 일으켜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선택은 쉬웠지만 실천과정은 녹록치 않더군요. 처음에는 남편과 자식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허나, 전쟁의 상처를 받은 고아들과 소외된 이웃들이 주위에 많더군요.”

유 목사가 충현원에 오자마자 시작한 것이 정원을 가꾸는 것이었단다. 집안 곳곳의 잡초를 뽑고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었다. 한국 토종 야생화를 구해다 심기도 하며, 입양아들이 보내온 꽃씨들을 정성스레 싹 틔웠다. 입양아들에게 돌아올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란다. 그래서인지 충현원의 정원에는 화사한 봄이 만발해 있다.

충현원은 6·25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될 예정이다. 광주시는 지난해 충현원을 복원해 해외 입양자 가족 등의 방문시 어린이시설 체험관과 숙소 등으로 활용하고 해외입양 자료 전시관, 선교사회 복지기념관 등의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발표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그는 항상 만나는 이들의 손을 잡고 “사랑하고 축복합니다”라고 말한다. 처음 만나는 이들은 이런 유 목사의 ‘사랑 나눔’에 멋쩍어 하기도 하지만 그는 항상 축복을 나눈다. 특히 이번 출판 과정을 통해 유 목사의 사랑 나눔은 짙어졌다.

‘전란과 아이들’의 이야기는 1957년 ‘전송가’(Battle Hymn)라는 영화로 제작돼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주인공은 브레이즈델 군목이 아니라 한국군 참전 미 공군 장교인 헤스 대령으로 그려졌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영화가 거짓 영웅을 만든 것이다. 헤스 대령은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지만, 브레이즈델 목사는 어떤 훈장이나 포상도 받지 않았다.

지난 1일 유 목사의 초대를 받아 한국을 방문한 브레이즈델 군목의 아들 카터 목사는 이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아버지도 그 영화가 잘못된 것임을 알았지만, 영화가 개봉된 이후 수익금이 전부 한국 고아들을 위해 사용될 거란 말을 믿고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오히려 그는 “선행이란 달러나 명예 등으로 측정될 수 없는 그 자체의 보상이 있다. (헤스 대령의) 책과 영화의 모든 수익금이 고아들에게 가도록 돼 있다. 지금 시점에서 비판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식으로 이슈를 흐리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유 목사는 이 모습을 보고 한국 어머니의 한 사람으로서 전란의 포화 속에서 1000명의 생명을 구해낸 브레이즈델 목사에게 감동을 받고, 카터 목사의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깊은 울림을 받았단다.

유 목사는 책의 마지막 구절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나의 좋은 행동은 또 다른 좋은 행동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마십시요. 당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옳은 것입니다. 당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하든 그것을 하십시요.”

그는 여전히 전쟁고아들을 위해 평화의 기도를 한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포성이 들립니다. 이러한 포성이 빨리 끝나고 평화롭고 안정된 세상이 이뤄지기를 소망한다”고.

글=강련경 기자 vovo@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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