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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자 충현원 등 록 일 2019년 10월 23일 14:57
제     목 끝까지 베풀고 간 '전쟁고아의 아버지'
끝까지 베풀고 간 '전쟁고아의 아버지'  조선일보
  • 장일현 기자  입력 2008.04.13 23:51 | 수정 2008.04.14 00:47

  • '1000명 제주로 피란' 미군 군목 브레이즈델씨
    "회고록 판권, 한국의 복지시설에 줘라" 유언


    故브레이즈델 목사


    6·25전쟁 초기, 서울에 남아있던 전쟁고아 1000여명을 극적으로 피신시킨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러셀 브레이즈델 목사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한국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다.

    브레이즈델 목사는 작년 초 자신의 회고록 '전란과 아이들, 그 일천 명의 아버지'가 나오면 그 한국어 판권을 광주에 있는 한 사회복지시설에 주라는 유언을 남겼고, 4개월 뒤인 작년 5월 1일 97세 나이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숨졌다. 그러나 미국에서 그의 회고록이 아직 출간되지 않아 한국어판이 먼저 나오게 됐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어 판권을 받게 된 사회복지법인 '충현원'이 다음달 1일, 러셀 목사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추모식과 함께 그의 회고록 한국판 출판기념회를 준비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유혜량(58) 충현원 목사는 "브레이즈델 목사는 생전에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먼저 회고록이 출판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면서 "그가 살아 있을 때 이 책이 세상이 나오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브레이즈델 목사는 1950년 7월 한국에 파병돼 있던 미 제5공군사령부에 군목(중령)으로 배속됐다. 대구를 거쳐 서울에 올라온 그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들을 보살피는 일을 시작했다.

    "서울 거리를 차로 지날 때마다 그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병에 시달리고 해충으로 뒤덮여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회고록 중에서)"

    그와 미군 장병, 자원봉사자들은 이 고아들을 데려다 먹이고 입힐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몰두했다. 하루에 50여명 이상의 고아들을 사회복지시설로 데려간 날도 있었다.

    그 해 11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변했다. 연합군이 급속도로 밀리면서 서울에선 제2의 피란민 행렬이 줄을 이었다. 브레이즈델 군목은 후방으로 떠나는 군 부대 차량 등을 통해 고아들을 실어 보냈지만, 서울엔 여전히 1000여명의 고아들이 남아 있었다.
    6?25전쟁 초기였던 1950년 고(故) 브레이즈델 군목(오른쪽 아래)이 서울에 남아 있던 전쟁 고아들을 C-54 수송기에 태워 제주도로 피신시킨 후 비행기에서 아 이들을 내리고 있다. 사회복지법인‘충현원’제공



    인천에 배가 있다는 말을 듣고 3일 동안 차 한대로 낮과 밤을 안 가리며 실어 날랐지만 그 배는 바다에 뜨기 어려울 정도로 낡은 것이었다.

    적군이 서울에 들이닥치기 직전인 12월 20일, 그는 극적으로 미 공군의 작전책임자를 만나 제주도로 향하는 C-54 수송기 16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 그날 밤 인천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미 해병대의 트럭을 동원해, 고아들을 인천에서 김포공항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이 일로 브레이즈델 군목은 나중에 미 공군 군목회의 감찰관에게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 장면은 "저는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군목의 일이 고아들의 문제를 무시하고 그들을 적지에 남겨두어 죽게 하는 것이라면 저는 당장 전역하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군종감실과 연관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회고록에 기술돼 있다.

    브레이즈델 목사의 회고록이 한국에서 출판되는 데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듯했다. 지난 2005년 광주 충현원 관계자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사진 전시회 '미군 병사들과 한국아이들-그들의 사랑 이야기: 1950~1954년의 미군 병사와 한국 어린이들'에 참가했다가 브레이즈델 목사의 아들을 만나게 된 게 계기가 됐다. 그 아들 역시 목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광복직후 1990년대 중반까지 고아원이었던 충현 원은 우리의 어려웠던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체험공간'을 만드는 계획을 추진 중이었고, 브레이즈델 목사의 아들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든지 알려달라"며 손을 잡았다.

    이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던 브레이즈델 목사측이 "현재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회고록의 한국어 판권을 충현원에 주겠다"고 제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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