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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자 충현원 등 록 일 2010년 07월 23일 09:35
제     목 기약없는 이별 40년 만에 눈물의 포옹

 

기약없는 이별 40년 만에 눈물의 포옹

광주 -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ㆍ1970년 입양연희·김춘실씨 옛 보육원에서 극적인 상봉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생이별했다. 보육원에서 만난 두 아이는 10년간 서로 외로움을 달래주며 친자매처럼 지냈다. 그러나 각자 다른 집에 입양돼가면서 기약없는 이별을 해야 했다.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로를 잊지 않고 있던 이들은 기적처럼 다시 만났다.

1970년 입양되며 눈물의 이별을 했던 김연희씨(50)와 동갑내기 김춘실씨 이야기다. 두 사람은 지난 19일 광주 양림동 사회복지시설 충현원에서 40년 만에 감격의 포옹을 했다. 두 사람은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밤새 나누며 옛 추억에 젖었다.

1970년 입양되면서 헤어진 김연희씨(왼쪽)와 김춘실씨(왼쪽에서 세번째)가 지난 19일 광주 양림동 충현원에서 상봉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두 사람의 상봉을 도와준 충현원의 유혜량 목사. | 연합뉴스

 


연희씨와 춘실씨는 1960년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광주 광산구와 동구에서 각각 발견됐다. 두 아기는 누군가에 의해 충현원에 맡겨졌고, 같은 처지의 고아 수십명과 함께 살았다. 동갑내기로 유난히 가까웠던 두 소녀는 10년 동안 자매처럼 지냈다. 하지만 70년 3월쯤 연희씨는 광주의 한 가정으로, 춘실씨는 전남 함평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연희씨는 이후 경기 부평에 거주하다 80년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던 남편을 만나 미국 이민을 떠났다. 춘실씨는 전남 목포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다.

연희씨는 미국에 살면서도 늘 고향인 충현원과 친구 춘실씨를 그리워했다. 결국 지난해부터 춘실씨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올해 2월에는 충현원의 유혜량 목사(60)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유 목사는 충현원에 남아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수소문한 끝에 이달 초 춘실씨가 목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소식을 들은 연희씨는 지난 18일 남편 더글라스 펄맨(57)과 함께 입국해 19일 밤 충현원에서 춘실씨와 극적인 상봉을 했다.

연희씨는 “내게는 춘실이와 돌아가신 박순이 여사(충현원 설립자), 총무님(충현원 총무 김영씨)이 가족과 마찬가지”라며 “충현원에 돌아오니 마치 친정에 온 것처럼 기쁘고, 그리워하던 춘실이까지 만나게 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춘실씨도 “가족 같은 연희와 다시 만나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연희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집에도 초대하고 좋은 곳도 구경시켜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충현원은 국내 현존하는 보육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49년 선교사 로버트 윌슨이 사택에서 4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던 것이 계기가 돼 52년 고 박순이 여사가 ‘충현영아원’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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